이 영화가 개봉했을 당시 떠들썩했던 논란이 기억난다. 오히려 그때의 나는 영화와 스캔들 어느 쪽에도 별 관심이 없었다. 창작의 소재가 자전적 이야기라니, 그것도 모두가 알고 지탄하는 이야기를. 나는 그들에 대한 도덕적 판단에 앞서 감독의 이야기꾼으로서의 자질에 먼저 의구심이 들었던 셈이다. 당사자들, 그리고 본작이 세간의 관심에서 멀어진 지도 오래된 지금 뒤늦은 감상과 소회를 남겨본다. 왓챠를 얼핏 살펴보니, 다수의 평자들이 남긴 코멘트 중 가장 빈번하게 등장하는 의외의 단어는 아마도 "정직함" 혹은 "솔직함"일 것이다. 내 생각도 그렇다. 이 영화가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더 사태를 노빠꾸로 정면돌파하는 인상을 준다는 점에서. 정직함이라는 단어가 지닌 윤리가 그 일련의 사건과 얼마나 동떨어져있는지, 그리고 이 영화는 정말로 "정직"한 지 새삼스럽게 따지고 싶은 생각은 없다. 궁금한 것은 이것이다. 다수의 관객들이 이 영화에서 정직함을 느꼈다면 그건 누구의 정직함일까?
먼저 영화의 정직함에 대해 생각해보자. 실화에 기반한 이 영화 스스로가 얼마나 실화에 근접했는지 그 정도에 관한 평가였을까? 내 생각에 그것은 몇 가지 간단한 설정만으로 충족 가능한 성질의 정직함이다. 그리고 관객들은 이 지점에서 영화의 정직함을 암묵적으로 용인했다. 그 다음으로 김민희의 정직함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다. 이것은 아마도 김민희에게 부여된 영희라는 캐릭터와 그 캐릭터를 연기하는 김민희의 테크닉에 따라 판가름날 것이다. 내 생각에 이 캐릭터는 지나치게 뻔뻔해서도 안되고, 그렇다고 후회와 자책 속에 짓눌려 있어서도 안된다. 또 반드시 그런 선택을 했어야만 하는 설명이 주어져서도 안되고, 반대로 아예 미스터리한 인물이어서도 안된다. 즉 너무 파렴치해도, 너무 궁상맞아도 용납될 수 없다. 나는 영희라는 캐릭터에 부여된 밸런스가 아주 절묘했다고 생각한다. 영희는 현실성이나 핍진성을 해치지도 않았고, 그러면서도 진짜 '김민희'와는 또 다른 제3의 인물로 남을 수 있었다. 이 두 번째 정직함 또한 베를린 여우주연상이라는 결과를 보아 널리 인정된 듯 하다.
마지막으로 홍상수의 정직함이 있을 것이다. 이 것은 전술한 두 가지 정직함을 당연히 포함하는 것이며, 상원(문성근)으로 등장하는 캐릭터뿐 아니라 감독이 만들어낸 꿈 시퀀스, 정체불명의 남자, 낭독되는 시와 노래와 책 속의 구절들, 여전히 존재하는 감독 고유의 연출방법, 그리고 그 모든 것을 통해 진하게 전달되는 애상적인 분위기에 대한 평가다. 이 영화를 보고 나면 슬프다. 그리고 몹시 허무하고 외롭고 쓸쓸해진다. 영화가 끝나고 다가오는 이런 거대한 감정 덩어리는, 어쩌면 우리가 당시의 홍상수의 감정이라고 착각하게 된 것일지라도, 창작자의 심정을 공유하고 있다는 생각에 기어코 도달하게 만든다. 여기에는 당연히 관객으로서 도덕적 편의(bias)가 작동한다("역시 그런 짓을 저지르고도 맘 편히 지내진 못하겠지!"). 그래서 영화는 감독이 마냥 맘 편히 지내지는 않더라는 진술서가 되고 수많은 관객들은 진술서의 "정직함"을 받아들였다. 앞서 말한 영화의 정직함을 치하(?)하는 다수의 평자들은 아마도 이 세 번째 유형에 관한 것을 말하는 것일 테다.
그런데 서두에 말한 것처럼 나는 여전히 도덕적 판단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고, 여기서 파생되는 정직함에 대해 쓸데없는 말을 주절거려 봤지만, 그럼에도, 이를 영화에 대한 평가와 결부시킬 생각은 더더욱 없다. 내 마음을 동하게 만들었던 건 이 영화가 가진 신비스러운 힘, 그 중에서도 김민희의 육체를 통해 발현되는 힘이다. 1막에서 다리를 건너기 전 절을 올리는 모습이나, 2막에서 담배를 태우는 모습 혹은 바다를 보며 돌아누운 모습조차도. 김민희의 몸짓에 대해서는 김영진 평론가도 주목한 바 있지만(씨네21, 1100호) 더 나아가서, 그 몸짓에는 어떤 제의(祭儀)적인 제스처들로 가득하다. 이 몸짓들은, 김민희라는 실존인물이 계속해서 영희라는 캐릭터를 현실 세계로 끌어당기려는 힘에 대한 반작용처럼 보인다. 전자가 현실에 대한 구심력이라면 후자는 원심력이다. 그리고 이 원심력이 바로 본작을 영상으로 남긴 일기장 따위로 격하시키지 않고 "영화로서" 남을 수 있게 지탱하는 거의 유일한 힘이다. 이는 영희가 민희로부터 벗어나려는 발버둥이고, 픽션이 논픽션에서 빠져나오려는 안간힘이다. 모든 영화적인 순간은 이 힘으로부터 탄생하고, 현실의 논란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지지하게 만드는 근원 또한 여기에 있다.
가장 정적인 몸짓 또한 예외가 아니다. 2막을 시작하면서 상영관에 앉아있는 영희의 얼굴은, 어둠 속에서 묘한 자태를 드러내며 터지기 직전의 응축된 감정을 눌러 담고 있다. 완전한 클로즈-업은 아니지만 홍상수 영화치고 제법 가까운 거리에 놓인 그 얼굴은, 과장을 조금 보태자면 <잔 다르크의 수난>에 비견 가능하다고 본다. 성녀의 얼굴은 아니지만 세속적 아이콘으로서, 모든 것을 정면으로 받아내면서. 그리고 이 얼굴은 영화 전체가 전달하는 비애를 총체적으로 대표한다는 점이서 <마스터>의 프레디까지 생각나게 한다. (일찍이 나는 이런 수준의 연기를 한국 영화에서 본 적이 없다. 불과 얼마 전까지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가 홍상수 영화 중 가장 배우에 의존하는 영화라 생각했으나 이제 아니다). 그래서 이 얼굴의 주인 영희는, 초면의 상대에게 무례하게 굴고 술김에 모든 남자들을 욕하며 소리를 질러도, 밉지가 않다. 그리고 해변을 따라 뒷모습만 남기고 홀연히 떠난다. 어쩌면 홍상수와 김민희의 그 당시 가장 간절했던 염원이 바로 이 떠나는 뒷모습일지도 모르겠다. 슬프고 엉뚱하게도, 홍상수의 영화적 도술마저 이때 함께 떠나버린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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