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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생각/M1

추락의 해부(2023)

by thekappie 2025. 4. 14.

 

본작에 대한 씨네21 전문가 한줄평 중 눈에 띄는 평이 하나 있다. "인간 주관의 불완전성에 대한 선처를 바라는 n번째 상소(김철홍)". 11명의 평자 중 가장 낮은 별점을 부여한 걸 보면, 이 n번째 상소문이 진부하다고 느꼈을지 모르겠다. 이런 영화가 으레 그렇듯이, 본작도 사건의 전말에 대해서는 큰 관심이 없고 사건을 둘러싼 이들의 드라마에 집중하리란 것도 모두가 알고 있다. 제목과 달리 영화는 추락을 해부하지 않는다. 반대로 가장 중요한 추락을 덮어두고 가려 한다. 산드라의 변호사 뱅상은 실제 살인 여부가 중요한 건 아니라고 딱 잘라 말한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중요한 건 그게 아니고~" 또는 "그런 것과는 별개로~"처럼 변명하는 자들이 늘 둘러대는 말들엔 사실 가장 중요한 것을 피해 가고 싶은 속셈이 있음을. 그래서 나는 사무엘이 어떻게 죽었는지가 여전히 중요하다고 믿는다. 그리고 영화에 나름의 해답이 제시되어 있다고도 생각한다.

 

주도면밀하게도, 쥐스틴 트리에는 충분한 여백을 비워두면서도, 관객에겐 딱 필요한 만큼의 시각 정보만 보여줬다. 감독은 정말로 이 사건의 내막에는 관심이 없는 것일까?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영화를 법정극이 아닌 가정드라마로 전환하여 감상하도록 유도하는 것인가? 그럴 수도 있지만, 어쩌면 이는 자살이 아닐 가능성을 고의적으로 열어두고, 오히려 자살이라는 결론에 수렴하는 서사적 흐름을 계속 의심하게끔 만드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예를 들어, 플래시백 속 사무엘의 토사물은 보여주면서, 아스피린을 게워낸 개의 토사물은 교묘하게도 카메라에 잡지 않았다. 아빠가 토한 그날과 똑같았다는 다니엘의 주장만 있을 뿐 우리는 눈으로 확인하지 못했다. 또한, 우리는 플래시백을 제외하면 살아 움직이는 사무엘의 모습을 본 적이 없다. 간략히 지나가는 법의관 소견에서도 추정 사망시각은 생략된다. 사인은 둘째치고 우리는 그가 언제 죽었는지조차 알 수 없다. 오프닝의 인터뷰 시퀀스 당시에 사무엘은 살아있었을까? 과연 자살을 결심한 사람이, 확률이 높은 다른 수많은 방법 대신, 죽기에도 애매한 높이의 3층 다락에서 차양막 모서리를 정확히 조준하고 뛰어내릴 선택을 할 수는 있는 걸까?

 

에둘러 말할 필요 없이 이 모든 의심은, 영화가 산드라의 남편 살해를 암시하고 있다는 생각에서 출발한다. 흥미롭게도 영화 속 재판은 증거의 싸움이 아닌 이야기의 싸움이 된다. 영화 초반부터 산드라는 법정에서 위증하고 다니엘은 진술을 번복한다("지금 생각해보니 알겠어요"). 증거로서의 증언은 없고 뇌피셜과 이야기가 난입한다. 검사도, 상담사도, 형사도 저마다의 결론과 각본을 들고 법정에 선다. 피고 측 변호사마저 이 법정에 소설이 개입되었음을 인정하면서, 다른 버전의 이야기를 상상해 보자 권한다. 그런데 똑같은 이야기에서 검사는 삶의 의지를 확인하고 변호사는 절망을 본다. 두 사람은 동일한 부부싸움 녹취록을 들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검사의 해석보다 변호사의 해석이 이 싸움의 징후와 결과를 더 부정적으로 보는 것이다. 자살에 이를 정도로 깊은 절망을 남긴 싸움이라면, 부부 사이에 그것보다 나쁜 싸움이 있을 수 있을까? 산드라는 최악의 경우 남편을 둔기로 내려친 살인자이고, 최선의 경우에도 남편을 자살로 내몬 냉혈한이다. 이런 각본을 변호사가 진지한 변론으로 채택한 순간, 오히려 모든 책임이 고스란히 산드라에게만 남게 된다.

 

조금 더 나쁜 암시를 생각해 볼 수도 있다. 깔끔한 숏컷 헤어에 단정한 정장차림으로 법정에 서있는 독일출생 산드라와, 폴란드계 성씨(Malesky)를 가진 프랑스인의 죽음. 여러모로 나치를 연상시키는 산드라의 외모(공교롭게도 <존 오브 인터레스트>에서 맡은 역할까지)와 나치의 피해자들(Malesky가 유대계 성씨인지 까지는 확신이 없다), 그리고 사무엘에 겹쳐 보이는 개 '스눕'에게 가해진 가혹한 생체실험. 개가 자의로 아스피린을 먹은 게 아닌 것처럼, 어쩌면 사무엘의 약물 자살 기도는 진짜 자살 기도가 아니었을지 모른다. 한편으로는, 산드라의 재판이 연일 매스컴에 오르내리고 법정에서 영어-독일어 동시 통역이 이루어질 때, (엉뚱하게도) 나는 예루살렘에서의 전범 재판이 생각났다. 재판의 과정을 스펙터클로 소비하고 싶은 우리의 욕망과 쇼로 팔아먹고 싶은 저들의 욕망은 사실 제법 오래된 일이다. 1961년 아돌프 아이히만이 법정에 출두하자, 재판장 모세 란다우는 기소문을 영어로 낭독하면서 재판의 시작을 알렸으며, 심문은 히브리어로 진행되고 여러 언어로 통역되었다. 그리고 이 재판 과정은 전 세계 37개국에 중계되었다. 그리고 아들 다니엘의 최종 진술은, 마치 비시 프랑스 정부를 연상시키는 듯한 굴복처럼 느껴져, 영화가 일관되게 유지하고 있는 서늘한 톤을 의식하게 된다. 또 한편으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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