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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생각/M1

어쩔수가없다(2024)

by thekappie 2026. 3. 5.

오프닝에서 만수는 종이를 하늘에 들어본다. 편지를 굳이 이렇게 감상하는 사람은 없다. 이건 태양이라는 광원에 얇은 종이를 비춰봄으로써 제지를 필름에 비유하는 것이다. 제지맨들은 영화산업 종사자들이고, 만수와 같은 관리직급은 영화감독이다. 다 아는 얘기지만 결국 이건 박찬욱 본인의 이야기일 터. 제지맨들은 고가의 음향장비로 옛 명곡을 듣고, '신발 파는 사람으로는 안 보일'만큼 기품 있고, 좀처럼 구하기 힘든 위스키를 즐긴다. 또 감독의 다른 영화들처럼 유려한 벽지와 커튼으로 집을 꾸민다. 서래는 해준을 두고 현대인치고 품위 있다고 했던가. 제지맨들은 박찬욱의 (품위 있는) 이미지와 취향을 공유하는 또 다른 박찬욱들이다.

 

영화는 곧장 요즘은 영화감독들에게도 힘든 시기라고 불평하기 시작하는데, 막바지에는 대뜸 인공지능과 자동화설비를 들이대며 "여러분들도 AI에게 직업을 뺏길까 걱정이시죠?ㅎㅎ" 라는 듯 공감을 요구한다. 사실 <어쩔수가없다> 에 가해지는 수많은 비판들 -이를테면 어떤 중산층이 저런 주택에서 저런 삶을 영위하느냐라던가 만수는 정말 어쩔 수가 없었는지 등- 에는 다소 부당한 지점도 있다고 생각하는데, 일찍이 <박쥐> 에서부터 박찬욱 영화의 인물들은 마치 '역할놀이'를 수행하는 것 같다는 평이 뒤따랐으며(김봉석, 허문영 등), 만수 또한 예외 없이 역할놀이에 충실하고 있을 따름이다(그러므로 소위 말하는 '개연성'을 따를 의무가 없다).

 

불만스러운 지점은 다른 곳에 있다. 오래전 모 영화리뷰 웹툰 작가는 <버닝> 을 두고 번지수를 잘못 찾았다며 영화의 현실감각을 꼬집었다. 작금의 청년들은 종수처럼 '세상이 미스터리 같다'는 생각은커녕, 오히려 현실을 투명하고 정확하게 직시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그러한 지적이 적절했는가는 잠시 제쳐두고, 본 작은 또 다른 층위에서 번지수를 못 찾고 있다. 정말로 본작이 박 감독의 자전적 하소연이라면 만수의 해결방식은 일절 도움이 되지 못한다. 박감독은 영진위 공모전에 합격하고자 경쟁자들을 제쳐야 하는 배고픈 감독/작가 지망생도 아니고, 봉준호가 사라진다 해서 황금종려상을 장담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건 일종의 기만이다.

 

이창동은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청년들을 동정해서 <버닝>을 각색했다. 그런데 지금 박찬욱은 영화산업과 그에 속한 스스로를 동정하고 있다. 우스갯소리처럼 스쳐가지만 유튜브와 넷플릭스에 대한 은밀한 적개심이 드러나는 대사들. 그런데 OTT와 유튜브로부터 극장을 사수하고 싶은 감독은 놀라우리만큼 아무런 창의성도 도전도 없는 영화를 만들었다. <기생충>은 물론이거니와 본인의 <복수는 나의 것> 이 서늘하게 도려냈던 계급 담론에서 단 한발짝도 나아가지 못했다. 박찬욱에게는 이제 창작에 대한 야심 대신 뽐내고 싶은 고상한 심미안밖에 남지 않은 걸까. 그렇다면 차라리 젊은 시절 활동하던 평론가로 복귀하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한 가지 더. 김소영 교수는 범모(이성민)가 오인과 오해 속에 죽었다고 했지만, 과정이 그러할지라도 애초에 타겟은 명확했다. 만수는 범모의 이력과 인적사항을 상세히 알고 있으며 사생활까지 은밀히 관찰했다. 범모가 죽어야만 했던 이유는 단지 만수가 그에 대해 너무 잘 알고 있어서다. 이 영화는 마치 7년 전의 종수에게 너는 엉뚱한 사람을 찔렀다고 훈수를 두는 것 같다. 이창동이 <버닝> 속 모든 신호와 단서들을 교란시켜 영화를 매혹적이고 온전한 미스터리로 남겨두었다면, 박찬욱은 모든 것을 백일하에 드러내고 있다. 전작에 이어 이번에도 그는 서사에 단 하나의 구멍도 허용하고 싶지 않은 걸까? 이를 그저 <버닝>과 <어쩔수가없다>의 원작 소설의 차이라고만 설명한다면 더 할 말은 없지만.

 

 

딴소리지만, 한국의 작가들에겐 베이비 붐 세대로 하여금 서사적으로 짊어지게 만들 수 있는 유일한 집단적 죄의식(소위 "업보")이 월남전밖에는 없는 것일까. 아버지들은 복귀 후 묵묵히 1차산업에 종사하다 결국 다시 빈곤해져야 하며, 아들을 외로이 남겨두고 사라져야 한다. 그 울분이 응축된 무기들은 수십 년이 지나 아들이 다시 꺼내쓸 때에도 여전히 '쓸만해야' 한다. 아버지의 죄가 아들에게 대물림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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