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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생각/M1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2025)

by thekappie 2025. 12. 16.

무력함에 대하여.

 

디카프리오를 영락없는 히피로 만들어 놓은 것은 PTA가 또다시 핀천의 소설을 각색하기로 한 순간 결정된 것이겠지만, <인히어런트 바이스>의 호아킨 피닉스에 이어서 왜 다시 볼품없는 중년의 히피 남성을 불러와야 하는지 짚어볼 필요가 있겠다. 그의 영화에 무기력한 남성들이 등장하는 것도 더 이상 새로울 것 없는 일이지만 이 두 명의 히피는 그 속성이 조금 다르다. 그들은 프레디나 우드콕이 지닌 호리호리한 몸매도 다부진 카리스마도 없다. 또 그들은 히피 고유의 천성처럼 여겨지는 낙천적인 나태함과 엉성함을 덜렁덜렁 드러낼 뿐이다. 그래서 이들은 마치 정치적으로 무해한 존재처럼 느껴지는데, 전술한 속성 탓에 이들은 결코 섹시해질 수도 폭력적일 수도 없기 때문이다. 디카프리오에게 주어진 외양적 요소는 숀 펜과 대비되어 "어필"이 불가능한 수준이고, 오랫동안 히피처럼 살아온 행실은 그에게서 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 의도와 능력을 거두어갔다.

 

무해한 중년 남성을 주인공으로 채택하는 일은 영화의 전체적인 톤을 가볍게 하고 익살스런 소동극처럼 보이게 하지만, 바로 그 무해성이 히피와 프렌치 75의 기묘한 공존을 가능케 하는 열쇠일 것이다. 암구호를 몰라도 조직에서 다시 그를 받아주는 까닭인즉슨 누구 말대로 그가 전쟁영웅이어서가 아니라 그가 어느 누구에게도 위협적인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문득 10년 전에 봤던 <안토니아스 라인>이 떠올랐다. 강렬한 클로즈업과 당당한 자기소개로 프렌치 75의 얼굴을 자처했던 퍼피디아. 마찬가지로 닉네임 정글 푸씨를 당차게 외치며 은행을 털던 여성 3인조. 대외적으로 프렌치 75는 분명 여성단체다. 그리고 몰락 이후에도 그 명맥은 비밀리에 수녀회에서 이어지고 있다. 마지막 순간에도 투쟁에 나서는 건 딸이고 집을 지키는 건 아빠다. 딸이 끝내 자기 손에 피를 묻혀야 했던 건 혁명가로서의 통과 의례 같은 것이 아니라 순전히 딸과 아빠의 능력 차이로 벌어진 일이다.

 

프렌치 75는 부차적인 도움 외에는 독자적으로 여성에 의해 '대를 이어가는' 여성 공동체이고(모계사회와는 디른) 안토니아의 공동체와 궤를 같이한다. 안토니아의 영역에 제한적으로나마 접근이 허용된 남성은 역시나 무해성을 입증한 늙은 농부였으며, 그런 그도 언제까지나 공동체 외부의 일원이었다. 디카프리오 또한 마찬가지인데, 조직이 그를 받아들여 주는 건 그가 퍼피디아의 남자라서가 아니고(조직 입장에서 그녀는 변절자다) 공동체 내부에서 남근을 세울 수 없는 (정확하게는 잠재적 분란을 야기할만한 성적 매력이 전무한) 안전한 조력자에 불과해서다. 실제로 그들은 이 퇴역 히피에게 더 이상 폭탄 제조 능력을 기대하지도 않을 것이며, 차라리 관능적인 외부자와의 공모와 배신이 재현되지 않는 것에나 신경 쓸 것이다. 그렇다면 오직 두 가지 남성들만 남는다. 조직 외부의 위험한 머저리들과 제한적 출입이 허용되는 안전한 멍청이들.

 

이미 수십 년 전 페미니즘이 제시한 대안적 공동체와 그 주변을 겉도는 무력한 남성의 구도는 낡은 것일지도 모르겠으나, 본작의 남자들은 조금 더 나아간다(?). 똑같이 강인한 신체를 가지고도 안토니아의 세계에선 무자비한 강간범이 되지만, PTA의 세계에선 역강간을 당했다고 둘러대는 에겐남이 된다. 식성의 분류법을 따르던 10년 전 초식남이란 유행어가 더 과학적이고 빠져나갈 수 없는 호르몬의 이름을 따 진화한다. 과거 안토니아를 위협하던 강간범들은 이제 철창 뒤에 혹은 흙 아래에 있소. 읍소하는 것으로 모자라 역강간 피해호소인은 말끔히 화장해버린다. 본 작을 <안토니아스 라인>의 계보를 잇는 페미니즘 영화라고 할 수 있을까? 그보다는 자조와 조소의 정서가 짙게 깔린 엇나감과 묘한 반항심리가 느껴지는 본 작을 <시카리오>와 <놉> 다음의 자리에 놓고 싶다. 큰 일은 여자들이 하는데 대체 우린 뭘 할 수 있죠?  "우린 아무 쓸모가 없다. 대마초나 가져와라 로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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