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잡생각/M1

파벨만스(2022)

by thekappie 2025. 10. 11.

영화는 초당 24장의 활동사진이라는 아빠와 영화는 꿈이라는 엄마. 하네케의 어록을 둘로 쪼개어 변형시킨듯한 두 선언을 시작으로, 작중 언급되는 자기장처럼 양친 각각의 영향력 아래 놓인 새미의 이야기가 전개된다. 친절한 스필버그는 새미의 인생을 이분법처럼 단순화하여 아빠와 엄마라는 상징적인 대립각을 세운다. 이성과 감성, 공학과 예술, 현실과 환상... 누구라도 이런 대립항을 열 가지는 더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오직 이 이분법적 사고를 강화시키기 위해서만 나타난 보리스 할아버지라는 우스꽝스러운 캐릭터까지 투입된다. 그리고 새미는 두 대척점 사이를 부지런히 오간다.

 

라스 폰 트리에라면 필시 여기에 남성과 여성이라는 항을 추가했을 것이다.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이래로, 여자는 늘 유혹하거나 타락하거나 마녀여야만 한다. 외도하는 쪽도, 자식에게 손찌검하는 쪽도 엄마다. 숲 속에서 달빛을 헤드라이트로 대체하고 춤을 추는 엄마의 모습은 영화의 가장 마법 같은 순간이지만 그렇기에 가장 "여성스러운" 순간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런 따분한 도식화를 무릅쓰고라도, 감독과 배우에 대유해보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이 영화는 감독의 길과 배우의 길을 나란히 펼쳐두고서, 아빠처럼 메가폰만 잡아왔던 새미가 처음으로 배역을 맡아 고생해본 뒤, 엄마라는 배우를 비로소 이해하는 과정이다. "아빠가 하는 일도 감독 비슷하잖아?" 같은 직접적인 대사가 아니더라도, 아빠는 로케이션을 고르듯 이사를 다니고, 베니라는 배역의 캐스팅 권한을 쥐고 있는 (뻔하지만)감독이다. 새미는 연출가로 시작해서 아빠의 자기장에 계속 머물러 있다. 새미의 정체성은 항상 감독이고 그에게 있어 엄마는 세상에서 가장 이기적인 사람일 따름이다.

 

한편 새미의 연출작에 출연한 세 명의 반응을 생각해보자. 로건과 채드는 영화 속 자신의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아 격렬히 화를 낸다. 반면 엄마는 "날 꿰뚫어 보았구나"라며 감동적인 반응을 보인다. 그녀는 십 수년간 미세스 파벨만으로서의 삶을 연기해 왔고, 이 모순된 대사를 말하는 순간에도 그녀의 인생 연기는 계속 이어지고 있다. 어설픈 두 청년들과 달리 미치는 타고난 연기자다.

 

이번엔 모니카라는 감독에게 지명되어 생애 첫 주연을 맡은 새미의 수난을 생각해보자. 그녀의 방에는 예수의 초상화들이 마치 헐리웃 스타처럼 도배되어 있다. 예수를 죽인 민족이라는 이유로 박해받던 새미가 우습게도 예수를 닮았을 거란 이유로 모니카에게 캐스팅된다. 모니카의 디렉팅 속에서 수동적으로 허둥대던 새미는, 첫사랑이 다 그렇듯 아픔으로 첫 배역을 마친다. 엄마를 이해할 수 있는 때는 이런 과정의 다음에 오는 것이다.

 

영화는 스필버그의 자전적 이야기라고는 하지만, 그런 것 치고는 너무나 많은 편집이 이루어진다. 나는 서두에 의도적으로 "새미의 이야기"라 칭했다(감독이 실제로 겪은 일화와 이 영화가 얼마나 같거나 다른지 따지려는 것도 아니고 그럴 수도 없다. "실화에 기반한"이라는 표현은 이미 두 세계의 차이를 가늠할 수 없을 만큼 아득히 벌린다). 그래서 감독은 두 개의 축으로 구성된 틀에박힌 우화를 만들고선, 실제로는 훨씬 풍부하고 모호한 인간이었을 본인의 모친을 "미치 파벨만"이라는 예술적 기표 안에 가두어 버린 다음, 그래야만 비로소 내가 이 사람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다고 자백하는 것이다.

 

부끄러움을 아는지 모르는지, 스필버그는 계속해서 스크린 밖에 있는 본인의 손(<파벨만스>를 찍는 카메라를 쥐고 있을)을 의식적으로 드러낸다. 괜히 지평선을 고쳐 잡는 익살스런 엔딩뿐이 아니다. 영화 초반 요리 중인 엄마가 있는 주방에 할머니(미치의 시어머니)가 들어와 양끝에서 서로를 노려보는 샷을 보자. 이 장소엔 새미가 없으므로, 이건 스필버그가 직접 보고 들은 일이 아니다. 미래의 스필버그가 과거의 어머니에게 '제법 힘들었던 고부갈등'이라는 한 가지 변명거리를 챙겨주는 행위다. 근데 감독의 손이 가장 적극적으로 과거에 개입하는 장면은 따로 있다.

 

<지상 최대의 쇼>를 보고 감명받은 새미가 장난감 기차와 8mm 필름카메라로 이를 재현한 결과물을 보면, 짧지만 분명히 컷이 여러 번 나뉘어 있다. 촬영한 필름을 집에서 현상할 수는 없으니 업체에 맡겼을 것이고, 현상된 필름은 스풀에 감긴 채 우편으로 도착해서 곧바로 엄마의 주머니로, 그다음 영사기에 걸렸다. 현상되기 전엔 편집이 불가능하고, 현상된 후엔 편집할 수 있는 시간이 없었으며, 그 나이의 어린아이가 필름을 정교하게 오려내고 이어 붙이는 것도 말이 안 된다.

 

그러므로 새미의 첫 영화는 스필버그가 일종의 마법을 부려 편집해 준 것이며, 우리가 <파벨만스>에서 본 새미의 영화와 실제 스필버그의 첫 작품은 분명히 다를 것이다. 옷장 속에서 새미와 미치가 이 편집된 데뷔작을 감상하는 장면은, 어쩌면 스필버그가 엄마에게 다시 보여주고 싶은, 어렸을 적의 그가 정말 만들고 싶었던 영화를 이제야 보여주려는 것 같아서 의뭉스러운 감독의 손길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이 마음이 훈훈해진다.

 

마지막으로 드는 생각은, 노년의 감독이 생전 모친에게 전하고 싶었던 말이 하나 더 있었던 것 같다. 새미와 엄마의 마지막 씬은 프롬 다음날 아침에 꿈을 꾸다 계란요리가 타는 냄새에 깨어나는 것처럼 몽롱하게 느껴지는데, 엄마를 용서한다는 새미의 말은 아무래도 감독이 과거에 하지 못했던 말이 분명하다. 배우의 길에서 감독의 길로 복귀한 직후의 새미에게 비로소 주어지는 한 번의 타이밍. 언제나 그렇듯이 이런 말은 뒤늦게 전할 수밖에 없다. 지독한 상실감을 겪고서.

'잡생각 > M1'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어쩔수가없다(2024)  (0) 2026.03.05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2025)  (1) 2025.12.16
보니 앤 클라이드(1967),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0) 2025.10.02
추락의 해부(2023)  (2) 2025.04.14
패스트 라이브즈(2023)  (1) 2025.03.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