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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생각/M1

보니 앤 클라이드(1967),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by thekappie 2025. 10. 2.

유사한 번안 제목으로 늘 함께 떠오르는 <내일을 향해 쏴라>의 두 탕아들이 마치 온몸으로 죽기를 거부하듯 스틸샷 속에 박제되었다면, 보니와 클라이드는 장렬히 망가져가는 육신을 고스란히 전시한다. 아마 저 죽음의 물리적인 형상은 4인 모두 비슷할 것이지만, 본작에는 죽음을 있는 그대로 덤덤히 받아들이는 어떤 직선적인 태도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시퀀스는 저 유명한 결말부가 아니라, 이미 죽음을 끌어안고 송장이나 다름없이 "살아 움직이던" 순간의 것들이다. 버로우 갱 일당이 차를 탈취하고 차주 커플을 강제로 태운 채 억지스러운 유희를 벌일 때, 영화 속 몇 안 되는 흥겨운 시간을 종식시키는 것은 차주의 직업이 장의사임을 알게 되는 순간이며, 보니의 얼굴은 사형 선고라도 받은 듯 창백해진다.

 

그중에서도 압권은 보니가 엄마와 가족들을 재회하는 장면인데, 클라이드의 넉살 좋은 궤변 속에서도 보니의 모친은 눈썹하나 흐트러짐이 없다. 그토록 바라던 엄마와의 포옹이지만 보니가 결국 절망하는 건 시체를 대하듯 딸을 보는 엄마의 모습 때문이며, 즐겁게 놀던 아이들과 모든 일행들이 어느덧 일사불란하게 퇴장한 후에는 공포스러울 정도의 황량함이 감돈다. 지금까지와는 어딘가 다른 이질적인 질감의 필름이 주는 감각과 언뜻 초현실적으로 보이는 배경은 이 시퀀스를 마치 악몽처럼 느껴지게 만들기도 하나, 버로우 갱들과 보니의 일가족 사이에 서로 간섭할 수 없는 결계가 놓여 텁텁한 모래알처럼 이물감이 느껴지는 장면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버로우 일당은 이미 산 자들의 세계에서 유리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연출은 죽음의 공포를 부각하는 것보다는 무의식 중에 체화된 일상으로서의 죽음을 드러내는 것으로, 보니와 클라이드에게 (시대적 배경을 고려하면 마땅이 내려져야 할 - 그리고 관객으로서 은밀하게 기대하는) 윤리적 형벌로써의 처형이 집행되는 것이 아니라, 종말론적 무드 속에서 두 사람이 정해져 있는 결말로 천천히 걸어가는 형국이다. 어쩌면 이것이 뉴 아메리칸 시네마를 관통하는 하나의 기조일지도 모르겠다. 이미 죽어버린 무언가를 응시하는 것. 차갑고 고요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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