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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생각/M1

칠드런 오브 맨(2006)

by thekappie 2022. 7. 20.

취향을 관통당하는 충격

 

방구석에서 기타나 뜯으면서 올드락/헤비메탈이나 듣던 고딩 시절, 알폰소 쿠아론이 누군지도 모르고 만난 영화.

비틀즈, 킹크림슨, 딥퍼플, 롤링스톤즈, 라디오헤드 등 영화에서 끝없이 흘러나오는 British Rock과, 창 밖으로 보이는 핑크 플로이드의 흔적에 나는 그만 정신이 혼미해졌었다(저 명단에서 Writer와 Performer를 혼용하고 있음은 양해 바람).

특히나, 뜬금없이 자동차 보닛을 비추면서 In the court of the Crimson King이 재생될 때의 아찔함은 잊을 수가 없다.

그냥 아무런 맥락도 없고 의미도 없이 삽입된 곡이라 해도, 분명 나를 비롯한 일부의 관객에겐 매우 강렬한 숏이었을 거라 생각한다.

 

요즘 세상에 올드스쿨 록음악이나 듣는 행위는 덕질이나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하는데, 나는 이제 "와 샌즈 아시는구나" 라던가 "#트친들이_못해봤을_경험을_얘기해보자" 따위의 발언에 담긴 기분을 이해할 수 있다. 이건 마치 애니 덕후가 탑건을 보러 갔는데, 영화에서 풀 메탈 패닉 주제가를 만난 경험과 같다. 영화 속 설정도 그렇고 노래들도 그렇고 나는 처음에 영화감독이 영국인, 그것도 밴드 음악에 심취한 영국인인 줄 알았다.

 

어둠의 경로로 봤던 그때에 비하면 영화의 인지도도 제법 높아졌고, 평가도 계속 높아지는 것 같다(개인적인 생각으로 시간이 지날수록 더 높게 평가될 것 같다). SF영화를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서, 매번 똑같은 사이버펑크 컨셉 눈뽕 CG떡칠로 식상한 세계관 그리는 영화보다, 이렇게 설정 하나만으로도 완성도 있게 디스토피아를 연출한 영화가 많이 나왔으면 한다.

 

다시 음악 얘기랑 연결 지어서,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당시에는 60년대를 풍미했던 히피 문화(우드스탁 같은)를 향한 열렬한 향수로 여겼고 나 또한 Love and Peace를 부르짖었으나, 이제는 그런 낭만에 대해서는 좀 시들시들해졌다. 무엇보다 지금은 존 레논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의 Sound track list는 흠잡을 곳이 없다. 각종 미술작품과 종교적 레퍼런스를 찾는 즐거움도 끝이 없다.

 

그냥 좋아하는 씬 두 가지만 언급하자면, 재스퍼가 아내에게 안락사 약물을 꺼내 줄 때 구도를 잡는 방식과 미리엄이 버스에서 끌려나간 뒤 그녀에게 찾아올 결말이 창밖에 시계열로 펼쳐지는 장면은 진짜 천재적이란 말 밖엔 할 말이 없다. 근데 사실, 롱테이크가 어쩌고 저쩌고 다 떠나서, King Crimson 만나는 순간 이미 내 인생영화로 결정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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