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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생각/M1

살인의 추억(2003)

by thekappie 2023. 4. 7.

배우가 카메라를 정면으로 응시하는 것은 한 때 금기 시 되기도 했고,

지금도 제한적으로만 활용되고 있지만

살인의 추억에선 송강호가 카메라를 정면으로 쳐다보는 것이 여러 차례 나온다.

 

그런 방법이 잘못됐다거나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고,

내가 옛날부터 가졌던 의문을 해결해준 단서가 되었다고 말하고 싶다.

 

영화 중간에 구반장(변희봉)이 박두만(송강호)에게 문제를 내는 장면이 있다.

나란히 앉아 조사를 받는 두 남성을 보여주면서,

한 명은 강간범이고, 다른 한 명은 강간 피해자의 오빠라는 정보를 주고

둘 중 누가 강간범이고 누가 피해자의 오빠인지 관상만으로 맞혀보라 한다.

이에 송강호는 정면을(카메라이자, 두 남성이 위치한 지점) 째려보다가 갑자기 컷이 넘어간다.

 

어렸을 때부터 대체 이 장면은 왜 있는 것이고, 둘 중에 누가 강간범이라는 건지

씻어내지 못한 의문점을 마음에 담아두고 있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생각해 보니, 송강호가 다시 카메라를 정면으로 쳐다볼 때

그 답이 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 기억이 맞다면 송강호는 이후에 카메라를 두 번 더 바라보는데

마지막은 그 유명한 엔딩 씬이고,

그보다 앞에 나오는 것은 더 유명한 "밥은 먹고 다니냐" 씬이다.

그런데 영원한 애드립 레전드로 남을 "밥은 먹고 다니냐" 바로 앞에

사실은 "X발 모르겠다"라는 한 줄의 대사가 더 있다.

 

그래서 송강호의 문제 풀이 정면샷은 그다음 정면샷인 터널씬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둘 중 누가 강간범일까요?" -> "모르겠다 시8!!"

이는 봉준호 감독의 연출의도, 즉 연쇄살인마를 추격하는 누아르의 외피를 쓰고

당시 군사정권하에 자행되었던 군경의 무분별하고 폭력적인 수사를 비판하는 것에 부합하면서,

김상경이 송강호에게 날린 일침("그렇게 사람을 못 알아봐서 어떡해? 형사가")과도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얼굴만 봐도 범인을 알아낼 수 있다고 자신만만하게 외치지만,

사실은 용의자를 구타하고 윽박지르는 것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는

무능하고 야만적인 그때 그시절 수사기관을 대표하면서

박두만 형사가 카메라를 보며 "모르겠다"고 자백하는 것이다.

 

물론 내 기억이 틀려서, 두 장면 사이에 또 다른 정면샷이 있을 수도 있으니

아님 말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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