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공포영화.
비선형적 서사의 영화, 그리고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무너트리는 영화에
이제는 다수의 관객들도 어느 정도는 내성이 생겼다고 봐야 한다.
시간의 흐름이 뭉개지고 사실관계가 뒤엉킨 플롯을 굳이 결말부에서 친절하게 풀이하지 않아도,
혼돈의 관람 그 자체가 주는 미스테리함을 즐길 수 있는 관객도 많아졌고
정답이 없는 문제에 대해 스스로 답을 찾아 극장을 떠나는 관객도 많아져서일까.
이 정도는 소화 가능할 거라 믿는다는 듯 유려한 편집과 테크닉을 자랑한다.
이 분야의 인싸 크리스토퍼 놀란의 영화뿐만 아니라
데이비드 린치, 찰리 카우프만 같은 작가들의 영향도 느껴진다.
이런 영화가 대게 그렇듯, 단 하나의 일관되고 논리적인 설명은 존재하지 않고,
그런 것에 의미를 두는 영화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만, 이상한 씬이 하나 있다.
앤과 폴이 요양원 옵션을 고려해보자는 밀담을 나누는 것을 엿들으며 다이닝룸에 앤서니가 입장하고,
저녁을 먹다가 치킨요리를 더 가져오겠다며 앤서니가 주방으로 퇴장했다가 돌아올 때
다시 엿듣게 되는 대화는 처음 입장할 때 들었던 바로 그 대화 내용이다(내용뿐만 아니라 화면도 동일).
앤서니가 "집"에서 겪는 모든 씬(앤의 시점으로 찍은 씬과, 병원에서 루시를 보는 씬 제외)은
씬과 씬 사이 반복과 변주를 통해 기시감과 위화감을 동시에 발현시키는 기능을 한다.
즉, 앤서니가 "이건 말이 안 돼"라며 절규하는 지점은 해당 씬에서 주어진 정보(대화 내용 및 외모)가
이전의 씬에서 습득한 정보들과 불일치하는 것을 앤서니와 관객이 확인하는 순간이다.
공포스럽기까지 한 그 철렁한 순간들의 누적으로 앤서니는 결말부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으로 붕괴되고,
관객은 그 모든 혼돈을 일종의 질병 체험으로 받아들인다.
그런데 그 이상한 씬에서 관객은 분명 "말이 안 되는" 순간을 목도했지만
앤서니는 그저 그 대화에 기분이 상한 듯 방으로 돌아가 문을 닫을 뿐,
이상한 점을 느낀 기색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내 기억이 맞다면.
(앤서니는 본인의 Intelligent 함에 자부심이 있다는 말을 했었고,
다른 씬에서는 스스로 이상한 점을 느끼면 즉시 반응했던 것을 기억하자)
씬과 씬 사이의 논리적 연결이 실패하던 순간들과 달리, 하나의 씬 안에서 모순이 발생하는 모습은
이 불행한 질병이 주는 혼란이나 기억의 왜곡에 대한 표현이라기보다는 차라리 꿈의 묘사에 더 가까워 보인다.
불명확한 기억이 주는 고통의 체험 사이에 기분 나쁜 악몽 하나가 끼어들어간 듯 이질적이다.
사소한 대화 하나까지 기억하려는 필사적인 '시도'와 이를 가볍게 부정당하는 '좌절'의 연속으로
앤서니를 그의 인생에서 퇴장시키는 일련의 과정 속에서
이 악몽이 보여주는 것은 시도도 좌절도 없다.
영화의 전체적인 방향성에서 다소 이탈된 이 장면은
앞 뒤가 안 맞는 기억들 속에서 나름의 논리적인 서사를 짜 맞춰보려는 앤서니와 관객의 시도,
즉 관람 중에도 지나간 씬들을 잊지 않고 계속해서 복기하려는 치열한 시도를 한방에 무력화시키고
결말부 이전 모든 씬들을 요양원에 남은 노인의 엉망진창인 회상 내지 뒤죽박죽인 꿈으로 해석될 여지를 강화한다.
당연히 특정 해석만을 지지하는 건 아니지만,,
개인적으로는 불필요한 장면이었다고 보며, 다소 과시적 연출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그 장면만 놓고 보자면 충분히 매력적이고 미스테리한 씬이었기에.
보는 사람에 따라 더 흥미로울 수도 있고, 팽팽하던 긴장감이 떨어질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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